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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07.06 가해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마태 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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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보좌신부 시절에 힘든 일이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교리교사 하는게 쉽지 않죠. 금쪽같은 휴일에 성당 나와서 봉사해야 하는 일을 선뜻 하기란 어렵습니다. 교리교사를 모집한다는 주보공지를 내도 지원하시는 분들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와중에 기존에 봉사를 했던 교사들은 하나 그만둔다고 선언을 합니다. 교사가 모자라면 아이들을 돌볼 방법이 없으니 보통 일이 아니죠. 부터 보좌신부의 각종 전략이 시작됩니다.

 

    밥도 주고 술도 주고, 문자도 보내보고 면담도 봅니다. 그래도 요지부동인 교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슬슬 저도 인내심에 한계가 옵니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빌고 엎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다시 부탁하고 빌어봅니다. 왜냐하면 주일학교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기 때문이죠. 내가 엎드리는 , 하느님 위해서는 정도는 해도 된다 생각하고 다시 좋은 말로 권유를 봅니다.

    다행히도 이렇게 부탁을 하면, 많은 교리교사들이 마음을 바꾸어 다시 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거의 돌이킬 없는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 등장합니다.

 

    한 명은 회당장입니다. 딸이 죽었습니다. 복음서에는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 심정은 말로 표현할 없이 괴롭고 슬플 것입니다. 딸이 이미 죽었는데 이제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그냥 끝이라고 보는게 정상입니다.

 

    또 명은 혈루증을 앓는 여인입니다. 달도 아니고, 열두 동안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서 12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12년간 병을 앓고 있었다는 말은, 여인의 전체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르코 복음의 같은 부분에서는, 이 여인이 온갖 의사를 찾아가보고 치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베로네제,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는 예수

    하지만 사람은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회당장은 자신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뒤로 가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보려고 합니다.

    이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구원이 예수님의 일방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 통해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오늘도 믿음을 갖고, 다시 예수님께 기도하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나와 이웃, 그리고 세상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을 주시길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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