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TV에서 스포츠를 즐겨 보시는 분이라면, 요즘 운동 경기에서 예전과 달라진 점 하나를 크게 느끼실 겁니다. 바로 비디오 판독 ‘VAR'이라는 제도입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심판을 보면서 다 판단했습니다. 심판이 결정을 내리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오심이 종종 나왔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하면서 경기 결과가 번복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애매한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감독이나 선수들이 비디오 판독을 해 달라고 요청을 하죠. 비디오 판독을 해 보면 심판의 결정이 틀린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대체로 공이 순식간에 지나가거나, 정말 미세하게 선을 넘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눈으로 봤을 때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볼 때 마다, ‘과거에 VAR이 없었을 때는 심판의 오심이 얼마나 많았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이 선을 넘고 안 넘고, 사람이 선을 밟고 안 밟은 것도 사람이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더 잘못 판단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고 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과는 다르게 우리는 자주 사람에 대해 심판하고 판단하고 단정짓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내 판단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판단의 내용이 긍정적인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남의 못난 점을 꼬집고, 남의 단점을 지적하고, 남의 실수를 확대하는 것들입니다.
쉽지 않지만, 그나마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시선은 일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사람의 모습도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닙니다. 나도 한정적이고 대상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판단은 잘못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악습을 조금이나마 멀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가? 가장 강력한 VAR을 갖고 계신 하느님께 맡겨 드립시다. 그 판정 결과는 그 사람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는데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맙시다. 남을 사랑하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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