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핸드폰 광고를 보면 전화 기능보다 카메라 성능이 더 좋다는 걸 많이 강조하죠. 그렇게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많이 올립니다. 내가 이런 곳에 왔다, 내가 이런 것을 먹었다 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서로 정보를 주고 받습니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데, 혹시 이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 시나이 산에 올랐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일출 시간에 맞춰 산 정상에 올라가면 눈앞에 펼쳐지는 시나이산의 장엄함이 구약성경의 장면들과 오버랩 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의 작은 화면을 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사진 몇 장 찍고는 ‘생각보다 볼 것 없네’ 하고 그냥 내려가 버리더군요.
파리 여행 중 오르셰 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술책에서만 봤던 고흐나 르누아르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직접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앞에 있는 자기를 사진 찍는데 바빴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림은 더 이상 안 보고, 자신이 올린 SNS에 ‘좋아요’가 몇 개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감동과 더 멋진 실제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마음 때문에 작은 디지털 화면에 시선을 뺏겨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이 다르고 즐거움을 얻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제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여행 장소에 와서는 그곳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내 오감으로 느끼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선과 기도, 그리고 단식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가 어렵게 번 돈을 내야하고,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동시에 마음이 조금만 빗나가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본질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칭찬을 듣는 것이 본질이 되어서 그것에 만족해 버리면, 다음에는 좋은 말과 칭찬이 없을 때 내 자선과 기도와 단식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본질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본질은 바로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 입니다.
이 본질이 중심이 되면 사람들의 칭찬과 좋은 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느님이 다 아시는데 뭘?’ 하고 우리 마음을 더 가볍게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도 좋지만 하느님이 갚아 주시는 것만큼 좋겠습니까? 하느님이 스케일이 더 크실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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