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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11.26 가해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루카 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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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들의 고민 하나가, 아마 신자분들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시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자분들이 많이  오시는 평일미사 때는 앞이 ~ 때가 많습니다. 이왕 오신 앞에 앉으시면, 오붓한 분위기에서 신부님이 신자분들 얼굴 보기도 좋고 신자분들도 미사에 집중하실 있어 좋을텐데 말입니다. 누가 누가 뒤에 앉나 경쟁하듯이 뒤에 많이 앉으십니다.

 

    [앞에 앉으면 은총, 앞에 앉으면 금총, 뒤에 앉으면 눈총, 제일 뒤에 앉으면 물총] 이런 개그가 수십 년 전에 있었는데 신자분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전에, 신부님들이 모임을 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의견이 나오더군요요.

    어떤 신부님은 아예 좌석 뒤편에 바리케이트를 치자, 어떤 신부님은 뒤쪽 의자에 함정을 파서 앉으면 푹 꺼지게 하자, 어떤 신부님은 이동식 제대를 만들어서 신자들이 뒤에 다 앉으시면 제대를 뒤로 옮겨서 미사를 해 버리겠다어떤 신부님은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원빈처럼 잘 생겨지면 최소한 자매님들은 가까이 안 오시겠나 하셨습니다. (이 분은 본판 불변의 법칙을 근거로, 많은 신부님들의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신자분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저 또한 하느님 앞에서는 한 명의 신자로서)  하느님 앞에서 작아지 겸손함,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 숨고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주변에 다른 신자들이 많을 때는 다수 안에서의 익명성 때문에 어디에나 앉아도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공간이 많은 성당에 들어가면 하느님 앞에 홀로 있는 자신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하느님 앞에 온전히 모습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로 인한 부끄러움 혹은 피하고 싶은 마음 선뜻 앞자리에 앉기가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종말의 때에 우리가 가져야 자세를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허리를 있는 , 머리를 있는 되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나를 보셔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 언제든지 가까이 오셔도 머무르실 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비록 겸손한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선뜻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늘 이런 자세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죠.

    하느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삶을 다짐하는 것이, 바로 지금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간, 그리고 종말에 대한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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