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빈 상자에 꽃을 넣으면 그곳에 꽃 향기가 납니다. 하지만 상한 음식을 넣으면 악취가 날 겁니다.
우리 자신에게 예수님을 넣으면 예수님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통해 예수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우리 자신에게 넣는 것이 가능한가. 예, 가능하죠. 우리는 성체를 통해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그래서 성체를 제대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예수님 같은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대로’ 모신다는 말은, 그냥 입으로 성체를 삼키는 행위가 아니라 성체 안에 담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구체적인 역사를 나 자신에게 체화(體化)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체를 제대로 모시면 그 안에 참으로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기도가 자리잡을 것입니다.
건물이 성당이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감실입니다. 감실 없으면 '성전'이 아니라 '경당'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있으면, 우리 자신이 바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인 우리 몸에 예수님이 아닌 것들, 사랑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 아닌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면 그것은 오늘 복음에 나온 성전과 비슷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하느님 찬양하는 사람은 없고 소 팔고 양 팔고 돈 바꿔주는 환전상이 있는 성전은 겉모습만 성전이지 그 안은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미움이라는 잡상인. 욕심이라는 잡상인. 분노와 절망이라는 잡상인.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잡상인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성체를 모시면서 내 자신이 성전임을 다시금 생각하고, 그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는 오늘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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