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과거에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 가난, 굶주림, 질병, 자연재해 등이었을 겁니다. 아직도 같은 이유로 여전히 고통받는 나라들이 있습니다만,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에서는 이 위험들이 거의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아직 분단 상태입니다만 전쟁의 위협은 거의 못 느끼고 살죠. 배고픈 것이 문제인 사람들 보다 많이 먹어서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과거의 위협들이 지금은 위협적이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위협적인 것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로운 위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방향, 무절제, 무의미’ 이 세 가지의 ‘없음’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실로 ‘방향 없음’이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주는 시대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특정 집단의 목적 혹은 이익을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위장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알려주지 않고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을 더 많이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TV채널이 4개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채널이 많아져서 볼만한 것이 많아진 건 아닌듯 합니다. 그 많은 채널에서 보여주는 것의 절반은 (내 삶에 도움이 안되는, 오히려 내 밥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연예인들이 뭐 먹으러 다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세상에서 먹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실로 '절제 없음’이 우리에게 많은 위험을 주는 시대입니다.
남 이야기 하지 말고 저 자신만 생각을 해 봐도, 아껴 쓴다 하고 신경 쓴다 해도 오늘도 많은 양의 썩지 않는 쓰레기를 배출했습니다. 오늘도 고갈되고 있는 자원의 일부분을 저 또한 막 썼습니다.
이렇게 버리면 더 묻어둘 곳이 없다, 이렇게 쓰면 더 쓸 것이 없어진다고 경고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버릴 수 있고 지금 당장 쓸 것이 있으니 크게 걱정을 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점 달라지는 날씨들, 오염되는 물과 공기, 예전에 볼 수 없던 비와 바람들은 뭔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실로 ‘의미 없음’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10살에서 40살 사이의 사람들 중 세상을 떠나는 경우, 그 첫 번째 원인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예전에는 ‘남의 일’ 인 줄 알았는데, 저 역시 살다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친척들 중에서 지인들 중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고 살 곳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찾지 못해 스스로 삶을 끝내도록 떠밀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날입니다. ‘전교 주일’ 이라고도 합니다.
이 시대에 전교란 무엇인지, 복음화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무방향, 무절제, 무의미’의 시대에 방향을 제시해 주고 절제의 가치를 보여주고 의미를 다시 찾게 해 주는 것이 복음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로 전해주고 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복음화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내 삶의 방향으로 두고 살아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세상 사람들의 성공담, 처세술, 가십거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힘으로 생각해보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쓰며 살고자 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끼고 보호하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쓰고 더 사라고 부추기지, 아끼고 다시 쓰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덜 쓰고 덜 버리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이 내 삶의 근원이심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나서 우연히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태어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의 내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시고 참 생명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알려주시는 분이심을 다른 이들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이것이 복음화이고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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