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뛰면서 웃으면 아이, 뛰면서 인상 쓰면 어른’ 이라는 기준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보면 뭐가 그리 신난지, 그리고 힘도 안드는지 깔깔 웃으면서 잘 뛰어 다닙니다. 친구랑 달리기 시합을 해도 웃고 술래잡기를 해도 웃으면서 뜁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뛰면서 오만상 인상을 씁니다. 물론 힘이 드니까 인상이 쓰이겠죠. 그런데 한편 어른이 되면 늘 경쟁하면서 뛰어야 하고 남을 이겨야 하는 목적으로 뛰어야 하다 보니, 그렇게 인상이 쓰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조카가 어린이집 다닐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운동회에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삼촌들 달리기 시합이 있었습니다.
조카의 기를 세워주고자 저도 출전을 했었는데, 나중에 형수님이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뛰기 전에 표정이 올림픽 출전 선수보다 더 진지하고, 뛸 때 표정은 세상 잡아먹을 듯한 표정이었거든요. (상품은 ‘고무장갑’이었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어떤 사람과 갈등을 일으킨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반감이 생길 법도 합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사칭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그를 받아주라 하십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예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넓은 마음을 가지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큰 사람인가를 두고 서로 경쟁하고 이기려고 할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이기고 지는지, 누가 더 크고 작은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니편 내편 하다가도 곧잘 어울려서 함께 놀게 됩니다.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서 뛸 수 있고, 금방 다른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어찌보면 예수님이 더 바라시는 모습이고 마음일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웃으면서 뛰어다녔을 겁니다. 그 웃음과 마음을 오늘 조금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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