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진정 인간답게 살아간다면, 그는 그 믿음의 논거가 된다.
그러나 신을 믿는 사람이 진정 인간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그 믿음을 반박하는 논거가 된다."
현대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의 말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참으로 선을 행하고 양심적으로 살면, 그 사람의 행위가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신앙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악을 행하고 비양심적으로 살면, 그 사람의 행위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앙의 불필요함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은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핵심 계명,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첫 번째 핵심은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자 목표이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는 예식에 얽매여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 예식을 잘 지키는 것] 과 같은 등식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될 때 하느님 사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는 예식(미사와 성사)을 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져야 온전한 예식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이웃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국민 모두가 불편함과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데, 이들은 하느님께 충성한다면서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의료진들의 피나는 노력을 한 순간에 망쳐버렸습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이들의 신앙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맹신을 비난하고 무지함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필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복음묵상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 묵상 - 2020.08.23 가해 연중 제21주일 (마태 16,13-20) (0) | 2020.08.22 |
---|---|
복음 묵상 - 2020.08.22 가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마태 23,1-12) (0) | 2020.08.21 |
복음 묵상 - 2020.08.20 가해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마태 22,1-14) (0) | 2020.08.19 |
복음 묵상 - 2020.08.19 가해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마태 20.1-16) (0) | 2020.08.19 |
복음 묵상 - 2020.08.18 가해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마태 19,23-30) (0) | 2020.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