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
부제 서품을 받기 전, 30일간 침묵피정을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제가 이 피정에 들어가서 저의 면담 신부님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냥 커피나 한 잔 하며 가볍게 시작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너에게’ 무엇이냐? 예수님이 ‘너에게’ 어떤 분이시냐?”
쉬운 질문인데 갑자기 물으시니 대답을 못했습니다. 머뭇거리고 있으니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번 피정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그래도 신학교 최고 학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너무 식상한 질문 하신거 아닌가?’ 생각하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쉬운 질문 식상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이 강조하신 포인트는 '너에게' 였습니다. 남이 아닌 '너'.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예수님은 전부 다른 사람이 말 한, 다른 사람이 느낀 예수님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많이 배우고 예수님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과 사상들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 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걸 눈으로 보고 머리로 외우고 시험만 쳤었습니다.
사순절 수십 번 지냈지만 ‘내가 슬펐나?’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들 슬픈 시기라 그러고 예수님 고통 받는 장면들 생각하게 하고, 미사 때 ‘수난, 고통, 못, 가시관’ 이런 가사 많은 성가 부르니 그 슬픈 분위기 때문에 슬펐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슬프지는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성탄 부활 수십 번 지냈지만 ‘내가 기뻤나?’ 생각해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슬프다는 사순시기 끝나니 기쁜가보다 생각하고, 대축일 미사 때 전례가 화려하고 웅장하니 기쁜 것 같았고, 알렐루야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서로 즐겁게 인사하고 하하호호 하니 기뻤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기쁘지는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이 때 부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괴로웠습니다. 곧 서품을 받으려는 사람인데, 그 동안 남들의 분위기에 맞추는 신앙생활을 했지 내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결혼을 앞 둔 시점에서 내가 배우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들이 다 예쁘다 좋다 해서 결혼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요?)
답은 안 나오고 마음은 답답하고, 침묵 피정이라 누구 붙잡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스트레스 풀러 어디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허용된 실외활동인 등산을 하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야호!’ 하지 않고, ‘내보고 어쩌란 말이야!!’ 하고 소리 지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한 것 처럼, ’‘나에게 예수님은 이런이런 분이다!" 하고 멋있게 결론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딱 떨어지는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설픈 마무리는 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살아 계신’ 분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예수님은 고정된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의 복잡한 상황과 시공간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그 분은 나에게 누구이신가?’를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고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대답에 따라 제가 살아가야할 예수님 닮은 모습도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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