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
보좌신부 때 본당에 가면 주로 주일학교와 청년회를 담당하죠. 이 때 참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 주일학교는 나름 체계적이고 잘 운영되고 있는 반면, 청년회는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본당에서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보좌신부는 당연히 좀 잘 안되는 단체에 신경을 쓰고 그 단체의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활성화 시키려고 애쓰게 마련이죠.
그런데 그게 늘 크고 작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더라고요.
청년회가 잘 안되서 청년회 간부들을 자주 만나고 회원들을 더 모으기 위해서 회식을 몇 번 하면 교사회에서 불만이 나옵니다. 이번 신부님은 청년들하고만 친하다, 청년회만 챙긴다 이런 말들이요.
반대로 주일학교가 잘 안되서 교리교사들 자주 만나고 학생들 더 모으기 위해서 행사를 좀 더 많이 추진하면 청년회에서 불만이 나옵니다. 이번 신부님은 청년들은 안중에 없더라, 교사들하고만 놀더라 이런 말들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 때문에 교리교사들과 청년회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뭐 좀 같이 해 보자 하면 죽어라 안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제 나름 억울한 것은, 불만을 이야기하는 공동체를 덜 챙기거나 소홀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제 부족함으로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해야 할 것은 하려고 애썼거든요. 섭섭한 마음 안 생기도록 신경도 썼고요. 그런데 이런 오해를 받으면 참 힘이 빠지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꺾였습니다. 회식 횟수, 행사 비용을 똑같이 계산해서 해야 불만이 안나오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오늘 예수님께서 비유말씀을 들려주셨는데, 하루 종일 일 한 일꾼과 늦은 시간에 와서 잠깐 일 한 일꾼에게 주인이 똑같은 품삯을 주는 내용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점에서 주인의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일 한 만큼 품삯을 받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일은 계산기로 다 해석할 수 없습니다. 계산기로 셈을 하면 늦은 시간에 와서 일 한 사람은 아주 적은 품삯만 받고 돌아가야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 정도의 금액인데,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사람의 상황을 생각해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입니다. 계산기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날 한 가족이 굶지 않고 사는게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주인이 하루 종일 일 한 사람에게 품삯을 적게 주거나 안 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과 약속한대로 정확하게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가 한 만큼 받았고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산기 결과만 생각한 나머지 옹졸하고 투덜대는 마음만 갖고 돌아가게 됐습니다.
만약 하루 종일 일 한 사람이 주인의 선한 행동을 보고 ‘와! 마음 씀씀이가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라고 말 했으면 오히려 보너스를 좀 더 받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하느님의 선한 의지의 대상이 내가 아니더라도, 함께 기뻐하고 지지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나에게도 더 좋은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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