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혹독한 강제노동을 하면서도, 수용소 사람들의 심리와 삶의 모습들을 심리학자의 관점으로 관찰하고 연구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된 사람들을 두 형태로 분류해서 관찰했습니다.
한 쪽은 수용소의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자신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희망을 가질 여지가 없었던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놓아버리는 사람은 그 때부터 점점 몸이 쇠약해지다가, 결국 강제노역을 못해 처형되거나 병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을 빅터 프랭클은 관찰합니다.
다른 한 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언젠가는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꼭 돌아갈 것이라고, 가족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이 대부분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빅터 프랭클 자신도 수용소에서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자신이 연구한 것들을 완성해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버텨냈습니다.
이 후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며, 그 희망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지옥과 같은 수용소에서 죽느냐 사느냐 문제는 외부 환경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갖는 삶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희망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가나안 부인의 말과 행동에서 떠오르는 주제가 바로 희망인 것 같습니다. 이 부인은 딸을 치료해야 한다는 그 의지 하나로 희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무시해도,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예수님께 거절을 당해도 부인은 희망을 갖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인은 치유를 받을 수 있으니까 희망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예수님의 단호한 태도는 오히려 희망을 꺾이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인은 희망을 끝까지 가졌기 때문에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것이 보장되고 예상되는 상태에서 갖는 희망은 얕은 희망입니다. 큰 의지와 믿음 없이도 가질 수 있는 희망이죠.
하지만 잘 되리라는 기대도 없고 좋은 것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갖는 희망은 ‘믿음’이라고 불릴 수 있는 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부인의 마음을 보시고,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질병으로 인해, 자연재해로 인해,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많은 이웃들이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을 갖기가 쉽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가나안 부인이 가졌던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 될 것 같으니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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