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성경이 원래 쓰여진 언어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신약성경은 희랍어(그리스어)를 알면 텍스트에 숨어있는 의미까지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로 성경 말씀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인 ‘어린이’가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어린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유아’, ‘아동’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어린이’라는 개념은 차라리 ‘비존재’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는 가치가 없고 무능하며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어린이'의 어원에도 예수님 시대의 어린이에 대한 개념이 녹아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훈민정음을 보면, ‘어린 백성이 니르고자 할배…’라는 부분이 있죠. 이때 사용된 ‘어린 백성’은 나이가 적은 백성이 아니라 ‘어리석은 백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어린 이’는 원래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이 오늘 어린이를 불러 세우시고 한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은 기존의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도 은연중에 현명하고 똑똑하게 살면서 신앙생활을 야무지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어리석게 사는 것, 그리고 이런 어리석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새롭게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조직을 운영하는 논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을 뽑고, 그렇게 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를 내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공동체, 하느님 나라의 논리는 다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도 함께 하는 공동체, 효율성과 합리성보다 보편적인 사랑과 포용이 우선되는 세상이 하느님의 뜻,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관계가 하느님 나라의 모습에 걸맞는 것인지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좀 미숙한 형제를 보고 답답해 하고, 느리고 뒤쳐지는 형제를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을 볼 때도 소위 말하는 ‘일 잘하는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를 구분하며 판단하는 진짜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신 예수님, 잃은 양 한마리를 더 애타게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살아가기를 오늘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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