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
작년에 어떤 신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을 따라한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아마 개신교 신자일 겁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오늘 복음 말씀을 실제로 한 번 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제법 예수님과 비슷하게 맨발에 가시관도 썼습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실제로 매를 맞는 건 무리였는지, 피가 묻은 것 같은 옷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일 중요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와는 다르게, 아래쪽에 작은 바퀴가 달려 있었습니다. 바퀴가 있으면 십자가를 지고 가는게 아니라 끌고 간다는게 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싶네요. 다른 것은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했는데 십자가는 그렇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사람들이 좋게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원래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이 ‘탄식’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바퀴를 보고 ‘피식!’하며 웃게 됐다는 웃지 못할 평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웃음거리로만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고 하면서 나 역시 쉽고 편한 십자가만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과 수고로움은 은근슬쩍 멀리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내가 바라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
신앙생활을 통해 내 삶의 편리함과 부유함을 바라면서, 내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에는 인색한 모습.
이것이 어찌보면 바퀴 달린 십자가를 끌고 가는 내 모습이 아닌가 돌아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지고 가신 그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아스팔트 위를 가볍게 굴러가는 신앙이 아니라, 느리고 무겁지만 진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신앙을 살고자 마음을 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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