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저의 어머니께서 세례를 받게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쪽 친척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자가 아니셨죠.
하루는 집안 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미사를 하는데, 어머니도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에 가서 앉아계셨답니다. 그 때 신자셨던 고모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미사보를 씌워주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내가 이 걸 쓸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미사보를 씌워주신 고모할머니는 신앙심도 깊으시고 참 인자하시고 성품이 훌륭하신데 비해서 자신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그 분과 같이 미사보를 쓰는게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이셨죠.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어머니는 미사포를 쓸 수 있는 합법적인 자격을 얻으시려고, 동네 성당에 가셔서 예비자 교리 받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다음 해에 제가 5살 때 형과 함께 유아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는 예수님 말씀에 주목해 봅니다. 그리고 정말 ‘잘 가르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가르친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상,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 말씀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예수님 명령을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명령한 것을 이래라 저래라 하고 말로 가르친다면, 잘 될까요?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따를까요? 아마 안 들을 겁니다. 오히려 ‘네가 뭔데?’ 라는 반문이 우리에게 돌아오겠죠.
가르침은 지시와 명령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삶의 모습, 그 사람이 보여주는 실천과 행동이 더 큰 전달력을 갖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한 것을 정말 잘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먼저 예수님이 명령한 것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실천과 나의 삶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고 피부에 와 닿는 가르침이 됩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예수님의 승천 또한 우리가 말로 사람들에게 전하기는 매우 까다로운 주제의 이야기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고 오히려 바보취급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건 과학적 사실이 아니고 예수님의 거룩한 마지막 모습을 신성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어설픈 변명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말과 행동을 사람들에게 보여줍시다. 또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돌아가셨듯이 우리도 하느님께 돌아갈 사람처럼 현세의 삶에 얽매여 집착하지 말고 너그럽게 살아봅시다. 그렇다면 지식의 형태로 승천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와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시는 예수님 승천의 본질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내 삶을 통해서 전해 질 것입니다.
제 고모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성당에 다녀라, 예수님이 이런 분이다, 저런 말씀을 하셨다’라고 한 마디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평소의 좋은 삶의 모습과 미사보라는 도구가 더해져서 어머니의 마음에 하느님의 존재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일상이 예수님의 명령을 스스로 살아가면서 우리 이웃들에게 가르치는 삶이 되면, 우리 삶 자체가 훌륭한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힘이 되어주십사 청하며, 복음 선포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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