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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05.22 가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요한 6,20-23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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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고통’이라는 주제는 우리 인간에게 해결되지 않는, 피할 없는 문제인것 같습니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쾌한 대답을 찾기란 어려운 같습니다.


   짧은 생각으로 고통에 대해 제가 생각해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인간은 아무도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고통스럽게 주십시오. 저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정상이라고 없겠죠. 예수님도 당신 수난을 앞두고아버지,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신데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고통을 겪습니다. 애써 피해보려고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죠.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고,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의 영향으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부유하고 높은 지위에 있어서 세상 걱정 없을 같은 사람에게도,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은 누구도 피할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고통에 대한 신비한 본성이 있는 같습니다. 고통이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애써 피하는 게 당연합니.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놀라운 모습을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의 순간 뒤에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믿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위인들이 자유, 생명,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고 희생한 일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희생이 가치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결단을 내릴 있었을 것입니다.

 

 

   위인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인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있죠.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도 예를 들어 말씀하신 어머니의 희생입니다.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지 어머니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기쁨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어머니는 위인이며 위대합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모두 고통의 결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랑의 결실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 뒤에 가치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매년 맞이하는 이 부활시기는 해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과 격려의 손길입니다. 고통은 예외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예외없이 그것을 이겨내고 기쁨을 기다릴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사소한 고통에서부터 우리 인생의 고통까지,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희망하며 고통의 신비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영광의 신비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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