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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06.26 가해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마태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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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접촉위안(Contact comfort) 이론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그대로 몸이 실제로 접촉을 해야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을 있다는 이론입니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새끼 원숭이를 어미와 떨어트려 놓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끼는 배가 고파 어미를 찾겠죠. 새끼 앞에 가짜 어미 원숭이 마리 놓아둡니다. 하나는 어미의 털과 비슷한 헝겊으로 만든 원숭이, 다른 하나는 철사로 만든 원숭이 입니다. 철사로 만든 원숭이에는 우유병이 달려 있어서 젖을 먹을 있는데 반해, 헝겊으로 만든 원숭이에게는 우유병이 없습니다.

 

 

    자, 새끼 원숭이는 어디로 갈까요? 얼핏 생각하면, 짐승이니까 먹을 있는데로 것이다, 그래서 우유병이 있는 철사 원숭이에게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새끼 원숭이는 헝겊으로 만든 원숭이에게 가서 계속 매달렸다고 합니다. 배가 고플 때만 잠깐 철사 원숭이에게 가서 젖을 먹기만 했지, 강한 애착을 보인 것은 헝겊 원숭이었다고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배고픔만 채우면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서로 만지고 쓰다듬는 접촉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 실험이 말해주는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과정이 아주 단순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당시의 현실을 알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은 최악의 피부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격리된 곳에서 살아야 하고, 사람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게 되면나는 더럽소!’하고 외치고 다녀야 했습니다. 이걸 어기면 사람들에게 바로 돌에 맞아 죽을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이라면,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갔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었단 말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간절하게 만들었겠습니까. 바로 접촉에 대한 갈망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리적인 아픔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다가갈 없는 아픔이 그에게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병환자의 마음을 아십니다. 말씀 마디로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실 있는 분이시지만, 나병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에게는접촉 필요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따뜻한 온기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마술처럼병이 나아라~ !’ 하고 치유해 주셨다면, 이야기는 그저 예수 신화로만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손을 내밀어 치유해 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도 있는 치유의 행위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 잡아주고, 힘들어 하는 친구 어깨 토닥여줍시다. 접촉을 통해 내가 남을 치유해주는 동시에 나도 치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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