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이 말씀에서 ‘십자가’는 실제 물건인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십자가가 상징하는 무엇이 있을 겁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귀찮은 것이 ‘배낭’입니다. 보통 짐을 싸면 무게가 10kg 정도 됩니다. 처음 들어보면 ‘생각보다 가볍네? 할 만하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걸 매고 하루 5-6시간, 30일 넘게 걸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평소와는 다른 무게가 짓눌리니, 무릎과 발목이 아파오죠. 물집 잡히는 건 기본입니다.
걷는 내내 ‘이것만 없으면 좀 걸을만 할텐데’, ‘어떻게 짐을 좀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소중한 것 또한 ‘배낭’입니다. 배낭은 생명줄입니다. 내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잘 때 덮어야 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빵과 물을 챙겨놔야 가게가 없는 외딴 곳을 지날 때 허기와 갈증을 채울 수 있습니다. 여벌 옷이 있어야 오늘 땀에 절은 옷을 내일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침낭이 있어야 따뜻하게 잘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생존에 필요한 것이 배낭에 다 있습니다.
가장 귀찮지만 가장 소중한 것, 그래서 매일 아침 큰 한 숨 쉬면서 ‘이걸 또 매고 가야해?’ 하지만, 놔 두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저 꾸역꾸역, 아프니 슬프니 하면서 매일 짊어지고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걸으면 ‘배낭의 무게’와 ‘십자가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내 삶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들, 나의 인간관계들 - 가족, 친지, 친구, 이웃, 동료들 -, 이들로 인해 받았던 고통들, 먹고 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과거와 잘못들,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나의 죄책감과 보속…
이것이 십자가처럼, 배낭의 무게처럼 내 몸과 마음을 매일 짓누릅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나의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가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었겠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있는가? 나의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있었을까?
그래서 십자가처럼, 배낭처럼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고 짊어지고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냥 당신을 따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삶에서 주어지는 고통의 무게 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없애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모두 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다들 자기가 힘들게 메고 온 배낭을 꼭 함께 찍습니다. 내가 감당하고 짊어진 고통과 아픔이 마지막에는 나의 자랑이자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루 하루 예수님을 따라 간다면, 이 십자가도 내 삶의 마지막에는 나의 자랑이자 보람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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