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산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을 걸으면 하루 하루 많이 힘듭니다. 보통 하루에 25~30km정도, 7~8시간을 걷는데요, 그냥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10kg정도 하는 배낭까지 매고 걸으니 더 힘들죠. 제일 많이 알려진 프랑스길이 800km 정도 되니까, 완주하려면 한 달 정도 꼬박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체험하는 좋은 것들도 많기 때문에 힘든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함께 걷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 하는 중에 길을 가다가,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대뜸 말을 건다거나 마실 것을 준다거나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이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전부다 서로 처음 만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마실 것이 없으면 서로 나눠 마시고,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면 함께 나눠 먹습니다. 길을 가면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 오늘 어디까지 가느냐, 무슨 이유로 왔느냐…" 목적지가 같고 방향이 같으니 함께 걷는 시간이 많고, 그래서 이런 대화들이 오고갑니다.
그러면서 서로 마음이 통해서 나중에는 술도 밥도 함께 나눕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앞에 도착하면 세상 천지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몇 년간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서로 얼싸안고 울고 웃고 난리가 나기도 합니다.
순례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걷는 사람들의 목적지가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길을 걷고 있지만 그 목적지는 다 똑같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입니다. 그래서 괜히 그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집니다. 같은 목적지 때문에 서로가 남이 아니라 쉽게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고 그 일치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치보다는 분열하는 경우가 많고, 함께 기쁘게 살기 보다는 서로 미워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직장에서 동료들과,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과 일치하지 못하고 기쁘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안 보면 그만이지, 모른척 하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서로 만나는 것 자체를 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양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인생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안 보면 그만 모른 척 하면 그만’ 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에는 이웃과 함께 하는 기쁨이 없고 서로 힘을 주고 받는 위로와 격려도 없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 힘이 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나와 함께 해 줄 친구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부족하고 모자라고 불편하지만, 함께 이해하고 나누고 어울려 사는 것이 예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고, 또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천국은 늘 단체입장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곳이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함께 하나가 되어서 기쁘게 손을 잡고 오늘 하루도 하느님 나라를 향한 발걸음을 함께 걸어가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 주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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