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좀 갑갑하게 들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내 눈을 아무리 이리저리 굴리고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봐도 내 얼굴은 볼 수 없습니다. (콧잔등만 겨우 보일 뿐입니다.)
‘거울로 내 얼굴 보는데?’ 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는 것이지 진짜 내 얼굴을 보는 것은 아니죠.
엄격히 따졌을 때, 거울이 약간 휘어 있거나 표면이 고르지 못하면 내 얼굴이 있는 그대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울로 보는 내 얼굴이 실제 나의 얼굴과 온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내 얼굴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을 통해서 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실제 내 얼굴을 보고 ‘똑같다’ 혹은 ‘다르다’라고 하면, 이 때 부터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정확성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따지고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시각도 왜곡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판단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반론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거울로 내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시각과 판단이 더해졌을 때 참된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시각의 차원에서만 따져봐도, 나의 원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에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각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의 마음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에 대한 판단에도 역시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를 듣기 어렵습니다.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죠.
헤로데도 그랬나봅니다. 동생의 아내와 혼인을 한 잘못을 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 그에게 올바른 이야기를 했고, 그 결과 오늘 복음에서처럼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들리는 조언과 충고는 사실 반갑지 않습니다. 나의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수 없지요. 하지만 그 소리에 귀를 닫아버린다면 올바른 내 모습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왜곡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된 내 모습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타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모습을 좀 더 깨끗하고 올바르게 만들어 간다면,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더 좋은 모습으로 나 자신을 보여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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