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본당에서 부활이나 성탄 대축일 미사 때, 본당 설립 기념일 같은 날이 되면 미사 후에 잔치를 했습니다. 보통 신자들에게 작은 기념품을 나눠 드리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잔치를 했죠. 식사 메뉴는 늘 소고기 국밥이었습니다.
국밥을 전담하셨던 본당 성모회 할머니(저는 할매라고 부릅니다)들의 국밥의 퀄리티가 대단했습니다. 전날 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고기를 삶고 육수를 끓이시기 시작해서, 밤새도록 그 가마솥을 지키셨습니다. 그렇게 오래 끓인 국물이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할매들도 점점 연세가 많아지시고 기력이 쇠해지시니, 본당 간부들 사이에서는 ‘잔치때 할머니들 그만 고생시켜드리자’ 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사실 국밥 한 그릇 먹는데는 몇 분 안 걸리지만, 만들 때는 몇날 몇일을 고생해야 하죠. 요즘에는 출장 뷔페 음식도 괜찮으니, 외부 업체를 이용하자는 쪽을 의견이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본당 잔치를 앞두고 제단체가 모여 회의를 할 때, 주임신부님과 간부들이 외부 업체를 불러와서 음식을 마련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모회장님 이하 할매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신자들 먹는 건데 왜 남에게 맡기느냐, 내 죽어도 국밥 만들다 죽을란다, 우리 잔치에 남의 음식이 웬말이냐 하시며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주임신부님도 총회장님도 할매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할매들은 다시 팔 겉어 붙이고 가마솥에 불 땡기시며 국밥을 끓이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마르타 성녀는 ‘활동’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찾아오셨을 때, 마르타는 바쁘게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라고 한 일이 있죠.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죽은 오빠 라자로의 부활을 믿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부활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된 부활과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마르타 성녀를 생각하면 국밥을 끓이시던 할매들이 떠오릅니다. 할매들은 당신들이 고생해도, 그걸로 신자들이 국밥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본당 잔치에 한 몫을 하시는 것이 기쁘셨던 것 같습니다. 할매들은 그렇게 본당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할매들이 농담으로 ‘내년 부활에는 내 국밥 끓이겠나?’ 하시면 깔깔 웃으시던게 생각나니, 괜히 코 끝이 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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