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학교 사목을 할 때, 다른 교구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연수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 학교의 독특한 교육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공부만 시키지 않는다.’ 입니다. 체력, 정신력을 키우고 영적인 힘을 기르게 한 뒤에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이 학교 교장 신부님의 교육철학이었습니다.
서울대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걸로 좋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구분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만, 이 학교는 서울대에 학생들을 많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학교가 전국적으로 유명했습니다.
연수를 받으러 갔을때, 당시 교장 신부님의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전 골든벨’ 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서, 마지막 문제까지 맞추는 학생이 골든벨을 울리고 장학금과 상을 받는 프로그램이죠.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이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합니다. 방송에 나가면 학교 홍보가 많이 되니까요. 골든벨까지 울리면 더 큰 경사가 납니다. 그래서 학교측에 골든벨을 하겠냐고 방송국에서 제안을 하면, 모든 학교에서는 아이고 어서오십시오 하고 환영을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전국에서 유명한 학교인데도 골든벨을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제안을 해도 거절한다고 합니다. 교장 신부님의 거절 이유는 이랬습니다.
“단순히 문제를 풀고 답을 외우는 것으로 평가해서, 그것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 놓고서, 1등에게만 큰 상을 주는 것. 이것은 가톨릭 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프로그램을 우리 학생들에게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장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전율했습니다. 이것이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모습이 되어야 하고, 다른 일반 학교와 차별화 된 교육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논리와 법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법칙과 상반될 때,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법칙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제자로서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통치자들과 관리들이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래야 국가가 안정되고 나라가 바로 선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법칙은 이것과 상반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법칙에 따르면, 높은 사람이 되려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 나라의 법칙을 따르려고 애써야 하는 겁니다.
하느님 나라의 법칙을 따른다고 결과가 달라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칙은 상반되지만 결과는 더 올바르고 선한 결과를 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정말 국민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된다면, 지금의 정치 현실이 나빠질까요? 아마 반대의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의 법칙에 따르는 삶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제자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그렇게 실천하고자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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