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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07.21 가해 연중제16주간 화요일 (마태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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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요즘은 덜한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은 가지 있죠. 혈연, 지연, 학연입니다.

    어느 성씨 어느 집안 사람인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이런 것으로 인간관계를 돈독히하거나 넓히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다행입니다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우리가 남이가’ 라고 하면서, 잘못된 일을 눈감아 주거나 권력의 힘을 이용하는데에 혈연, 지연, 학연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던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의혈연’, 가족 친지들의 목소리가 당연히 컸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혈연이 교회에서 세력을 드러내면 공동체 안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혈연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도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예수님 가족 친지들이 교회 공동체에 '내가 예수님 몇 촌인데... 내가 유다지파 35대손이라 예수님 아재뻘인데…’ 이러면서 목에 힘을 줬을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기도 합니다. 갈등이 생길만도 합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이 혈연과 가족에게 얽매인 분이 아니시라는 알리려고 것입니다. 예수님의 혈연이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가 되어서는 안 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의 여부에 따라 맺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마태오 복음사가가 강조한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같은 부분에서 좀 더 강하게 예수님의 가족을 부정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냥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잡으러 왔다고 하죠.)

 

 

   

    예수님이 혈연이라는 특별한 관계에 얽매인 사랑을 보여주셨다면,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에서 소외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편적인 하느님 아버지를 기준으로 사랑을 하시니, 그러면 누구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기뻤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과 사돈에 팔촌도 안되지만 그게 대수냐 싶어서 다행이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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