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을 수량화해서 이것을 100이라고 해 봅시다. 내가 생각하는 것 중에 일부분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겠죠. 그러면 실제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100 중에 얼마 정도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대체로 생각하는 것보다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비교적 적지 않나요? (단순히 계산해서, 말 하는 시간보다 말 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요.) 쉽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퉁쳐서 20 정도라고 칩시다.
나머지 80은 사회의 통념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내가 스스로 조절하거나, 혹은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드러내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에게서 드러나는 그 20의 부분, 즉 내 말과 행동에 따라 사람들은 나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에게는 전체 100이 다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관점에서 더 많이 보여지는 내 모습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20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80의 영역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산다면, 이 80의 영역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그 20의 영역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과 동일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면 그것이 곧 내 존재 전체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게 되죠.
예수님은 하느님이 보시는 80의 영역에 우리의 관심과 수고가 향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20의 영역에만 몰두하고 있는 율법학자들의 행동을 꼬집어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인사를 받고 높은 자리에 가서 길게 기도하는, 이런 보이는 20만 잘 하는 사람들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 이들은 나머지 80의 부분은 돌보지 않는, 오히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이들이 엄중히 단죄받을 것이라고 단호히 선언하십니다.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 오늘 등장합니다. 바로 가난한 과부입니다. 이 과부에게서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렙톤 두 닢 뿐이었습니다. 복음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겉으로 보이는 행색도 초라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렙톤 두 닢은 지금 돈으로 1000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가 주일미사 때 다 큰 어른이 봉헌금 1000원 넣으면, 저라도 ‘요새 애들도 1000원 안 넣는데, 어른이 뭐 저래? 커피 한 잔도 1000원 넘는 세상인데?’ 라고 속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드러나지 않는 80을 보는 하느님의 관점에서 그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죠. 그녀가 바친 1000원이 그녀의 전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가장 많은 돈을 넣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그녀가 가장 아름답고 높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칭송을 받은 과부를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의 모습, 감추어진 나의 생각과 마음을 돌이켜봅니다. 내 삶의 전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인지를 생각해보며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추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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