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학교 사목을 몇 년 하면서, 그 동안 정년 퇴임 혹은 명예 퇴임을 하시는 선생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퇴임을 하시고 학교를 떠나시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학교를 떠나시는 모습과 주변의 장면들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업무에 성실하시고 경력을 핑계로 뒤로 빠지지 않으시던 선생님들, 빠르게 변하는 학교 문화에 같이 따라가지는 못하시지만 최선을 다해 배우면서 후배 교사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려 애쓰시던 선생님들, 젊은 교사들이 줄 수 없는 인자함과 따스함을 아이들에게 주신 선생님들.
이런 선생님들은 당연히 많은 후배 선생님들의 칭송과 박수를 받으며 퇴임을 맞으십니다. 학교에 더 계시지 못함을 다들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찾아옵니다. (오래된 사립 학교라 그런지) 중년의 나이가 되어 머리가 희끗해진 졸업생들이 와서, 마치 그 때 소년 소녀들처럼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퇴임을 축하해 드리곤 합니다.
다들 이런 퇴임을 맞으시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쉽죠.
연차가 높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빠지는 선생님들, 컴퓨터 못하고 기계 못 다룬다고 젊은 교사들에게 업무를 다 미루시는 선생님들, 수십 년 전 방식의 수업과 학생지도를 그대로 교실에서 반복하는 선생님들.
이런 선생님들의 퇴임은 밍밍합니다. 식순에 따른 행사 진행과 박수, 그리고 건조하고 형식적인 말들이 오가다 퇴임식이 끝납니다. 그 분이 가시면 언제 그런 분이 계셨냐는 듯 교무실은 빠르게 일상을 찾게 됩니다. 당연히 찾아오는 제자들도 없고요.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시점, 전례력의 끝을 향해가는 시기에 왔습니다. 매 년 반복되는 이 마무리의 시기는 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여러 모습의 퇴임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삶이 곧 퇴임식의 모습이구나. 아름답게 사신 분들은 아름다운 퇴임을, 그저 그렇게 사신 분들은 그저 그런 퇴임을 맞이하시구나."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 나라, 우리 신앙이 말해주는 종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내 종말의 모습입니다. 내가 지금 하느님 나라를 살면 내 종말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종말은 두려움과 징벌이 될 것입니다.
최종 판단은 심판자인 하느님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단순 명확한 심판 기준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병들었을 때 무엇을 했느냐.”
물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늘 애덕을 잘 실천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또한 종종 그것을 뒤로 자주 미룹니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나중에 기회 있을 때, 나중에 여유 있을때 하자고요.
하지만 오늘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오늘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을 강조합니다. 지금이 마지막이면 ‘나중’과 ‘다음'은 없습니다. 이 긴박함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움직이는 나의 삶이 내 종말의 모습임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디, 우리 모두 꼭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각자의 마지막 순간에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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