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교목신부로 사목을 할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 아이들의 입시와 관련된 상담이나 진로에 대한 상담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대입 안내 설명회를 하는데, 어느 어머니 한 분이 저에게 오셔서 진지하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신부님, 제 아들을 신학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습니까? 국영수 중심으로 해야 합니까? 학원에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켜야 할까요? 학생부 기록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시킬까요? 봉사활동을 보낼까요? 영어 성경을 읽혀 볼까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라 처음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말씀을 드려야 해서, ‘어머님, 말씀 하신 것들은 일부러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어머님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고, 아이도 주일미사 잘 나가고 주일학교 나가라고 해 주십시오. 예비신학생 모임도 등록하시구요.’ 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이 어머니 눈빛이 ‘이 사람 뭐야? 이게 상담이야? 신부 맞아? 교사 맞아?’ 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시고는 휑~ 하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서, 신부가 되기 위해서 저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들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걸 억지로 준비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죠.
학생 답게 공부 성실하게 하고, 신앙인으로서 봉사도 하고 신앙생활 꾸준히 하는게 필요하죠. 저는 사실을 말씀드렸는데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더랬습니다.
("어머니, 국영수는 EBS교재 중심으로 공부시키시고, 라틴어 중요하니까 선행학습 시키시고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 해서 학생부 관리 해야 하고요, 4복음서 주요 내용 미리 암기 시켜야 합니다!" 이런 답을 원하셨는지...)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에서 열 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사도로 뽑은 사람들의 소위 말하는 스펙을 보면 세상의 기준과는 많이 다릅니다.
일단 드러난 사람만 봐도, 어부 4명(베드로, 안드레아, 요한, 야고보), 친로마파 1명(세리 마태오), 반로마파 1명(열형당원 시몬) 입니다. 나며지 6명은 출신 불명입니다. 명함 내밀 만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죠. 열 둘 모두가 똑똑하거나 힘이 강하거나 부유한 사람들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인사 정책을 잘못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사도들은 각자 나약하고 부족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항구한 믿음과 신의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도들의 희생은 곧 예수님 부활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저들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증거하는 예수는 누구인가? 저들이 두려움 없이 선포하는 예수부활은 과연 무엇인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사도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 두 사도들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사도로서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역시 가진 것이 적고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이 사도로서의 부족함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그에 따른 행위가 사도로서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사도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은, 제가 저 어머니에게 알려드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각자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에서의 사명을 성실히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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