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제가 서품을 받을 때는 주교좌 성당이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래서 서품식을 신학교 체육관에서 했습니다. 6월 말에 서품식을 했는데요, 여름이 한창 시작되는 때라 늘 날씨가 무더웠습니다.
게다가 체육관에 냉방이 전혀 되지 않는데다가 신자분들이 정말 입추의 여지가 없이 자리를 채우시니, 실내 온도가 엄청 덥습니다.
선풍기를 군데군데 둔다 하지만 그 많은 신자분들의 넓은 공간을 다 감당할 수는 없죠. 그래서 신자분들이 갖고 계신 안내문이나 책자로 부채질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그 날 신자분들 자리를 보면 나비떼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됩니다.
그런데 그 더운 날씨에 절대 부채질을 안 하시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새신부들의 아버지 어머니 입니다.
이 날 부모님들은 주로 정장이나 한복을 입으시기 때문에, 간편한 복장을 한 신자들보다 훨씬 더 덥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시고요.
그런데 왜 부채질을 안 하시느냐. 바로 아들 신부들 때문입니다. 이 날 신부들도 제의를 다 갖춰 입어야 하기 때문에 덥고 땀도 많이 납니다. 하지만 새신부들이 서품 받으면서 부채질을 할 수는 없죠. 그냥 땀을 닦으면서 버텨야 합니다.
아들이 땀을 흘리면서 버티고 있는걸 보는 부모님들이 자기 혼자 시원하자고 부채질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도 같이 버티시는 겁니다. 아들이 힘든데 자기만 괜찮을 수 없는게 부모님 마음이니, 같이 더위를 감당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교구의 원로 신부님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품식 와서 덥다고 짜증내면서 부채질 하는 사람들은 서품식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부모님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부채질 안 한다!”
이제는 새로 지은 대성전에서 서품식을 해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습니다. 아들 신부를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과 행동을 볼 수 있는 옛 이야기가 됐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행사를 ‘구경'하는 멤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으로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삶을 닮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아 사는 것은 기쁨과 행복의 삶이지만, 또 한편 고통과 희생, 수난도 동반합니다.
이 희생과 수난의 삶을 최고의 경지에서 닮은 분들이 바로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님과 똑같은 고난을,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신 분들입니다. 가장 뚜렷한 징표로 예수님의 삶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교자들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신앙선조들은 용감하게 순교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나라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을 오늘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한 신앙 선조들의 후손들입니다. 후손인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 신앙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냥 멀찍이서 ‘구경’만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감수해야 할 크고 작은 희생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순교에 ‘참여’할 수 있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복음묵상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 묵상 - 2020.09.22 가해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루카 8,19-21) (0) | 2020.09.21 |
---|---|
복음 묵상 - 2020.09.21 가해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마태 9,9-13) (0) | 2020.09.20 |
복음 묵상 - 2020.09.19 가해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루카 8,4-15) (0) | 2020.09.18 |
복음 묵상 - 2020.09.18 가해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루카 8,1-3) (0) | 2020.09.17 |
복음 묵상 - 2020.09.17 가해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루카 7,36-50) (0) | 2020.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