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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2020년

복음 묵상 - 2020.11.01 가해 모든 성인 대축일 (마태 5,1-12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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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태어나서 아직 나비를 번도 아기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기가 어느 나비 애벌레를 보았습니다. 아기는 애벌레의 징그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나비가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할 없습니다. 그저 평생을 꾸물꾸물 기어다니는 하찮은 벌레 하나로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비를 적이 있는 어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애벌레의 모습이지만 자라서 허물을 벗으면 나비가 되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 땅을 기어다니는 존재에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로 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직 실제로 나비를 보지 못한 아기에게 애벌레의 모습에 대해 알려줄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것은 나비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그럴 없는 상황이라면 그림책이나 사진으로 설명을 있겠죠. 애벌레가 누에고치를 만드는 장면, 고치를 뚫고 나오는 장면, 날개를 펴는 장면 등을 보여주며 설명 주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기가 설명을 주는 어른의 말을 신뢰해야 합니다.그 사진 몽땅 거짓말지! 내 눈에 보이는게 애벌레인데 어떻게 저런 나비가 되나!’ 라고 고집을 부리면 방법이 없습니다.

   아빠 엄마는 나를 사랑하시니 내가 모르는 것을 잘 알려주시지.’ 하는 신뢰가 있으면, 아기는 부모의 말을 듣고 나비를 상상할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상상한 나비를 실제로 보는 날이 겁니다.


    아직 나비를 모르는 아기에게 나비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것이 우리 교회가 인(聖人)을 기억하며 공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의 이야기를 봤습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들은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사셨던 분들입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인간적인 나약함과 부족함 안에서 고뇌하고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일에, 인간적인 것에 머무르시지 않은 분들이 바로 성인들이십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늘 나라를 꿈꾸던 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자신의 간적인 나약함을 회개 통해 변화시키고, 세속의 유혹을 인내 극복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하늘에서 받을 상'을 그리워하며 현세의 삶을 사신 분들이십니다.

 

    이런 성인들은 세상의 삶을 마친 후에 하느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이 바로 성인을 공경하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만 보면 우리는 세상에 얽매여 살아갈 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땅을 기어다닐 수밖에 없는 애벌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성인들의 삶은 우리 존재가 이상의 것을 추구할 있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벌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있는 삶을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기에게 아빠 엄마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 나비의 존재를 믿을 있는 것처럼,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 성인들의 삶을 동경하며 그분들처럼 살아가기를 희망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세례명이 되는 성인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세례명, 성인이 그냥 성당에서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의 길잡이며 목표 되는 것임을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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